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화보

  • 1913년 이승만이 원장직을 맡은 한인중앙학원의 학생과 교직원 일동<br />첫번째 줄 좌측에 이승만
  • 하와이 한인사회 지도지들 (1913년)<br />하와이에서 활동 중 이승만 박사 환영식에 참석한 독립운동가 고석주 선생(뒷줄 우측 세번째)
  • 한인기숙학교 앞에서 교포유지들과 (1913년 4월 13일)<br />
  • 하와이 호놀룰루 기차역에서 나란히 포즈를 취한 이승만과 박용만 (1913년 4월 20일)<br />한때 결의형제를 할 만큼 일생의 동지였던 두 사람은 독립운동 방법론과 국민회기금을 둘러싸고 대립하여 결국 정적이 되고 말았다.
  • 이승만 박사가 호놀룰루에 도착한 날 출영객들과 함께 찍은 사진 (1913년 2월 3일)<br />가운데 하와이 레이를 걸친 이승만, 왼쪽 끝이 박용만이다. 이날 그는 부친의 부음을 들었다.
  • 하와이 교민청년들과 함께 (1913년 7월 19일)<br />
  • 1913년 하와이에 정착을 시작할 당시 이승만 박사가 살았던 작은 집<br />동포들의 성금으로 활동해야 했던 그는 언제나 최저 수준의 생활을 해야 했다.
  • 1913년 하와이 교민들과 함께<br />
  • 1913년 5월<br />
  • 1914년<br />(사진 : 기파랑 제공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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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이승만이 여학생 기숙사를 짓기 위해 교포 유지들과 함께 정지작업을 하고 있다. (1916년 12월 25일)<br />
  • 이승만이 1918년에 설립한 남녀공학의 한인기독학원(Korean Christian Institute)의 학생과 교직원 일동. 와이알라에 알리이오라니 스쿨시대 (1918-1921)<br />1층은 교회, 2층에 교실, 3층에 여학생 기숙사가 자리잡고 있었다.
  • 1918년 이승만이 학교 구내에서 여학생 제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<br />
  • 필라델피아의 소극장에서 개최된 한인대표자대회에 참석했던 대표들의 기념사진 (1919년 4월 14일- 16일)<br />왼쪽에서 세 번째가 민찬호, 둘째 줄의 그 다음이 정한경, 그리고 그 옆에 서있는 이가 서재필이다. 이승만은 서재필 오른쪽에 서있으며 옆 얼굴을 보이고 있다.
  • 1919년 4월 16일 필라델피아에서 한인자유대회를 마친 <한인대표자대회>의 참석자들.<br />왼쪽에서 첫 번째가 정한경, 세 번째가 이승만이며 중간에 태극기를 들고 있는 여인이 노디 김 양이다.
  • 필라델피아의 <한인대표자대회>가 끝나는 날(1919년 4월 16일)<br /><독립기념관>에 들어가 옛날 미국 건국대통령 워싱턴이 앉았던 자리에 좌정한 이승만. 옆에 태극기를 든 정한경, 그 옆이 노디 김양.
  • 필라델피아 한인자유대회 학생 대표단<br />
  • 3·1 운동 소식에 접한 서재필과 재미동포들은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필라델피아 리틀극장에서 제1회 한인의회를 개최하였다.<br />16일에는 한인자유대회를 개최하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시가행진을 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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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3·1운동 후 1919년 4월초 러시아령 연해주에서 선포된 노령임시정부에서 국무경(국무총리) 겸 외무경으로 임명된 이승만<br />
  • 이승만이 한성정부의 ‘집정관총재’로 선출된 다음 시카고의 한인교포가 만들어 배포한 홍보용 컬러 우편엽서<br />
  • 이승만이 서울에서 선포된 한성임시정부의 집정관총재로 선출된 뒤 미국에서 만들어진 엽서 (1919년4월)<br />
  • 이승만이 한성정부의 ‘집정관총재’로 선출된 다음 호놀룰루의 <한인기독학원>에서 개최된 이승만 대통령 취임 축하행사<br />
  • 집정관총재(대통령) 이승만과 구미위원부 위원장 김규식 (1919년)<br />
  • 캐나다 출신의 영국 [데일리 메일]지 기자 맥켄지와 이승만 (1919년 7월)<br />맥켄지는 일제의 질곡에 시달리는 한국인의 처지에 깊은 동정을 갖고 있었다.
  • 호놀룰루에서 이승만이 세운 한인기독교회 임원들과 함께 (1922년 3월).<br />
  • 3·1절을 맞이하여 구미위원부가 워싱톤 포트랜드 호텔에서 기념식을 갖고 쵤영한 사진이다. (1920년 3월)<br />앞줄 왼쪽 두 번째부터 송헌주, 이승만, 김규식
  • 미국 덴버의 안재창씨 농장에 걸린 태극기 앞에서 독립운동가 임동식, 정한경, 이승만이 포즈를 취했다. (1920년 3월)<br />
  • 1920년 콜로라도주 덴버의 안재창(왼쪽에서 두번째) 소유 농장을 방문한 이승만 등 재미 독립운동가들이 기념 촬영을 했다.<br />이승만의 익살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.
  • 1920년 호놀룰루에서 이승만과 노백린<br />
  • 1920년 임시정부 대통령 공식사진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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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상하이 교민단이 베푼 환영회 (1920년 12월 28일) 왼쪽으로부터 손정도, 이동령, 이시영, 이동휘,이승만, 안창호, 박은식, 신규식<br />1919년 4월13일 상하이에 세워진 ‘대한민국 임시정부’의 초대 대통령이었으며 29년이 흐른 뒤 수립된 대한민국 합법 정부의 초대 대통령도 이승만이었다.
  •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 신년축하식 (1921년)<br />
  • 대한민국 임시정부 3·1절 2주년 기념식 단상. 상해 정안사로 올림픽극장에서 개최된 3·1절 2주년 기념식 .<br />이승만대통령 이하 국무위원들이 참석하였고 단상 위에서 김병조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있다.
  • 대한민국 임시정부 3·1절 2주년 기념식 객석<br />
  • 상해에서 이승만과 신익희 (1921년)<br />
  • 이승만 남경 방문시 질레트(P. L. Gillett) 목사와 선교사들 (1921년 3월 9일)<br />
  • 상해에서 새장을 돌보는 이승만 (1921년 4월)<br />
  • 상해에서 중국인으로 변장한 이승만 (1921년 4월 9일)<br />일본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입었던 중국인 옷이다.
  • 이승만 상해 체류시 크로프트(Croft ) 목사의 저택 앞에서<br />
  • 이승만 중국 소주 관광시 크로프트 목사 부인과 함께 (1921년 5월 24일)<br />
  • 1921년 워싱턴에서 열린 군축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구미위원부 청사를 나서는 한국대표단의 이승만 단장과 서재필 부단장<br />
  • 구미위원부 요원들 (1921년)<br />앞줄 왼쪽부터 이승만, 여비서, 돌프 변호사
  • 구미위원부 직원들과 함께 (1921년)<br />
  • 태평양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톤에 도착한 정한경과 이승만 (1921년 11월 12일)<br />
  • 워싱턴에 개설된 사무실에서 집무하는 이승만 임시 대통령의 모습 (1922년 1월)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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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호놀룰루에서 이승만이 세운 한인기독교회 임원들과 함께 (1922년 3월)<br />
  • 왼쪽부터 김규식, 이승만, 송헌주. 주로 미국에 근거를 두고 외교활동에 진력하던 시절<br />
  • 하와이 대한인동지회 대표 모임 (1924년 11월 23일)<br />이승만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결성되었다. 1924년 11월 대한인동지회는 이승만을 종신 총재로 선출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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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1931년<br />
  • 제네바 군축회의 참석차 런던에서 제네바로 향하는 도중 파리비행장에 내린 이승만 (1933년 1월 4일)<br />
  • 스위스 제네바 국제연맹(The League of Nations) 본부 앞에 선 이승만 (1933년 1월)<br />
  • 소녀시절 프란체스카 도너 양의 모습<br />
  • 신혼여행을 마치고 호놀룰루항에 도착한 이승만 부부 (1935년 1월 24일)<br />
  • 호놀루루에 도착한 이승만 부부를 따뜻하게 맞아준 하와이 교포유지들<br />왼쪽 끝에 서있는 인물이 하와이 동지회의 지도자 이원순이다.
  • 이승만이 1938년 4월에 4만여 달러의 건축경비를 들여 준공한 호놀룰루 한인기독교회의 모습.<br />이 건물은 경복궁 대궐의 정문인 광화문을 본뜬 것이다. 앞에 있는 사람들은 이승만을 후원해준 대한부인구제회(The Korean Women's Rellef Society) 의 회원들이다(1939년 2월)
  • 이승만이 하와이를 떠나 워싱턴으로 향할 때 LA 동지회 지부에서 마련한 송별연 (1939년 8월 9일)<br />
  • 대한인동지회 한인교민 고문단, 한인선교 한인기독교협회 (1939년 10월 25일)<br />
  • 미국 전역을 다니며 독립을 위해 강연을 하던 시절 (1933년 9월 17일)<br />
  • 뷰트 몬태나 농장에서의 모습 (1933년 9월 16일)<br />왼쪽부터 이승만, 전인수 씨 부인, 장기영 전 서울시장
  • 1942년 1월 16일<br />
  • 주미외교위원부의 위원장으로 선출된 후 뉴욕에서 (1941년)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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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주미외교위원부 주최로 워싱턴에서 열린 한인자유대회 참석자들 (1942년 2월 27일)<br />본 대회에서는 임정 승인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미국 대통령과 의회에 제출할 것을 결의했다. 맨 끝에 이승만이 서있고 앞에서 두번째 줄에 프란체스카 여사가 보인다.
  • 미주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 후원회 모임 기념 (1944년 1월 23일)<br />
  • 국제연합 창립총회 참석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워싱턴 대표단 일행 (1945년 5월 22일)<br />앞 줄 왼쪽 끝에서 송헌주, 이승만, 이살음 목사뒷 줄 왼쪽 끝에서 윤병구 목사, 정한경, 유경상, 임병직
  • 구미위원부를 후원한 워싱턴 주미외교위원부협찬회 일동 (1944년 5월 28일)<br />이승만의 외교활동을 지원하였다.
  • 한미협회가 임정승인을 촉구하기 위해 뉴욕의 에스토리아 호텔에 마련한 만찬회 (1944년 8월 29일)<br />높은 자리의 왼쪽 끝에 프란체스카 여사. 그리고 두 사람 건너 이승만 박사다. 아래에 왼쪽에서 두 번째 테이블의 왼쪽 끝에 자리 잡은 동양청년이 한표욱 박사이다.
  • 한미협회 (the Korean-American Council)<br />태평양 전쟁 시기 대정부 로비 및 선전활동을 위해 이승만을 중심으로 미국인들로 구성된 단체이다.
  • 이승만이 미국정부에 요청하여 발행한 대한민국의 독립을 기원하는 우표 (1944년 11월)<br />이승만은 이 우표가 발행된 사실을 알리기 위해 상해임시정부에 있는 김구에게 편지를 보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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