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최초의 영한사전보다 40년 앞서 옥중 집필한 영한사전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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첫 사전보다 40년 앞서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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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승만이 옥중에서 집필하다 중단한 영한사전 초고. 오른쪽 표지 1903, 왼쪽표지 1904는 집필연도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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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승만의 옥중 집필한 영한 사전은 45년 연세대 나건석교수 등이 대학재학시절 일본의 영일사전을 번역해 만든 최초의 영한사전보다 40년 앞선 것으로 국내 어문학계에서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하고 있다.


16절지보다 약간 큰 갱지를 1백여장씩 묶어 한권으로 만든 이 유고는 이박사가 21세때 서재필박사가 이끌던 협성회에 가담, 『외세배척』 『주권수호』 등을 외치며 정치개혁을 주도하다 2년 뒤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생활을 하며 옥중에서 펴낸 것.
유고 1권 표지에는 붓으로 「영한사전 필사본」 (The Transcript of An English-Korean Dictionary)이라고 영어로 씌어있고 2, 3권에는 각각 1903년12월4일과 1904년7월30일 등 집필날짜와 날짜밑에 「감옥수」라고 영어로 표기돼있어 옥중에서 집필한 것을 나타내고 있다.

1페이지에 8∼10단어씩 모두 2천여 단어로 돼있는 이 유고는 A군에서 F군까지 진행되다 중단됐는데 이박사가 1904년 개화파의 집권으로 풀려나면서 도미해 바쁜 독립운동 생활을 하면서 나머지부분을 미리 채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.
이승만은 배재학당 재학시절 영어에 뛰어 난 재질을 보여 미국인이 세운 제중원에서「파이팅」부인의 한국어강사를 하며 영어를 익힌 것으로 알려졌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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